세대로교회와 함께한 중국선교

벌써 중국에서 나온지 참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세대로 교회 하늘가족의 많은 분들의 기도와 후원 속에 청년의 때를 주님 앞에 드릴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19~20)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청년의 시간을 인생에서 십일조로 드리고 싶다는 소원함과 주의 손에 들려 사용되기 원하는 사모함을 가지고 중국을 갔었습니다. 나이가 연소하고 젊은 때였고 신학도 하지 않아서 부족하였지만 주께서는 단순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저의 마음을 받아 주시고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장 24절

중국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영혼들을 데리고 소그룹모임을 하고 또 그 아이들과 함께 전도를 나가고 그 아이들이 리더가 되어 다른 아이들을 세우고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령께서 하셨다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영접하게 되고 함께 예배 드리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연소한 저를 사용하셔서 주님은 일하셨고 매일 매일 주 앞에 돌아오는 영혼들 앞에 그저 감사하고 기도하고 찬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저를 믿을 수 없었기에 참 많은 분들에게 기도 부탁을 했었습니다. 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한국에 세워서(keyman) 매일 매일 저와 선교지를 향해 기도해주실 중보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약40명 정도의 분들이 계속적으로 매일매일 기도해 주셨던 일이 기억에 납니다. 돌아와서 더 느낀 것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서6장 12절) 이 철저한 영적 싸움 앞에 많은 분들의 중보와 기도의 삽겹줄로 그 분들이 싸워 주시고 저는 열매를 거두는 역할을 감당하는 은혜를 누렸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저를 사용하셔서 복음의 최전선에서 영혼을 낚는 어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2004 내몽고 단기선교를 통해 받은 축복

Q 단기선교를 섬기게 된 계기나 시작할 때의 마음

청년부 담당 목사님이셨던 목사님을 통해 중국에 있는 내몽고 자치구에 있는 내몽고인들은 여전히 내몽고어가 아닌 중국어로 된 성경을 읽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2004년 7월에 선교사님과 현지인들을 통해 내몽고 성경이 번역되었으며 여러 교회가 번역된 성경을 비밀리에 중국 내몽고에 전달하는 사역에 세대로 청년부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언어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겐 간절함 일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청년들 중 선교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선교에 대한 이해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다소 무모해 보였던 도전은 20대의 청년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용기와 믿음을 주셨기에 가능한 일 이었습니다.

Q 기억에 남는 사건과 인물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던 적이 없지만 내몽고 가정교회에서 예배하던 시간은 지금의 저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외부인이 설교할 수 없는데 장주창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게 된 그 때를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공안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었기에 예배 내내 긴장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끔씩 그때를 떠올리며 제가 간절함으로 예배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며 잘못 드린 예배들에 대해 회개하곤 합니다.

저희가 중국 내몽고에 방문하는 표면적 목적은 내몽고에 있는 두 예비부부의 결혼식 참석이었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심지어 본 적도 없는 부부였지만 그들의 언어로 축가를 불러주며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이었습니다. 축가를 부르는 내내 그 곳에서 그들의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길 기도했습니다.

Q 은혜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

그때 저와 청년들은 내몽고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내몽고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었습니다. 오로지 인도하실 하나님과 청년들의 순수한 열정과 헌신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선교를 준비하면서 앞서 다녀온 팀들이 성경 전달에 실패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기도 했고 시간이 다가올수록 우리가 많이 부족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으며 낯선 몽골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가 힘겨워하거나 마음이 닫혀 선교에 걸림돌이 되지 않길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걱정과 예상을 깨시고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숙소를 예비하셨으며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고 큰 대접을 받게 하셨습니다. 무사히 선교를 마치고 돌아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내몽고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함께 교제하며 대접받는 동안 온 교회 성도들이 금식하며 저희를 위해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내몽고 단기선교는 청년들의 사역이 아니라 세대로 가족이 함께한 사역이기에 한국에 돌아온 저희의 마음은 감사가 더욱 넘쳤으며 겸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의 사역을 돌아보며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성경을 전달하는 일에 실패했지만 사역에 참여했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간절함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이루신 것입니다. 십여 년 전의 내몽고 사역을 돌아보며 함께 했던 청년들과 목사님을 생각해보니 우리는 많이 부족하고 연약하였지만, 하나님을 향해 한없이 뜨거웠던 청년의 때를 걷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저에게 잔잔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오늘이 다 가기 전에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야브네홀 헌금

엘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땅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을 때 메마른 하늘에 떠오르는 손바닥만 한 구름 속에서 큰비를 본 것처럼 양승헌 목사님의 비젼을 쫓아서 교육관을 찾았다.

배명고 야구장 쪽에 수상안전센터를 기부채납식으로 건물을 짓고 그곳을 교회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으나 학교 당국과 협의가 안 되어 하나님께 야브네홀 같은 온전한 처소를 주실것을 기도하며 2017년 6월 야브네홀 추진위원회를 7명으로 구성하게 하셨다.

재정팀장으로 위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지만 될 수 있을까 현실적인 불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교회 재정은 넉넉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았고 헌금하시는 분들도 사업가 비중보다는 회사원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었으며 매입하고자 하는 곳도 배명고 인근으로 평당 4~5천만원 하는데 가능할까?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목사님은 접근성, 상징성, 실용성, 경제성 4가지 요건에 맞는 건물을 찾아볼 것을 제시하였으며 징검돌 전략, 씨앗 전략, 문패 전략 3가지 전략을 제시하셨다.

이후 13차례 회의를 했으나 큰 진전이 없었다.

성도님들의 기도와 목사님이 제시한 요건과 전략에 따라서 위원들이 알아보던 중 부동산중개업을 하시는 집사님께서 건물을 소개하여 2017년 9월 답사하고 추석 이후에도 매매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싸인이라 믿고 전교인 공동의회에서 동의를 얻어 2017년 12월 계약, 2018년 3월 잔금을 치르고 세대로교회 소유가 되었다.

매매계약을 하기 전 건물 답사를 갔을 때 건물 내외부는 형편이 없었다. 지하층은 암울했다.

성도님들의 건축약정 헌금 15억원 외에 잔금을 치르기 위해서는 최소 30억이 필요하여 대출처를 알아봤으나 주거래은행조차도 교회에는 대출 안 해준다고 하면서 교회 인근의 수협은행을 소개하였고 그 지점에서 최근 교회 건물 매매자금 대출이 있었고 대출해주겠다 하였다. 대출처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다. 잔금은 치렀으나 전면 리모델링이 필요한데 자금이 없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을 통해 해결해주셨다.

본격적인 리모델링은 비용을 절감하고자 직영공사를 택하였고 장로님 한 분이 맡아서 공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서 수천만 원 나가는 지출로 매일 통장 잔액을 조회하게 되었고 주일날 헌금액에 따라 교회를 나서는 발걸음이 좌우되었다.

이런 사정을 목사님은 알고 있을까? 중직자들은 알고 있을까? 세상 걱정 혼자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잔금을 치르고 중직자분들게 추진위원장 이름으로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기도편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여 보내기도 하였다.

10여 년 재정담당자를 하면서 재정통장 잔액이 제로(0)인 경우도 경험하면서 사역자 사례비와 선교비는 정한 날짜에 지출되어야 하기에 재정을 채워주시도록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런 사정에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맘에 와닿지도 않는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걱정과 의심과는 다르게 사례비 지출이 지체된 적도 없게 하셨고 리모델링 공사도 완벽하게 하셨다.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것을 경험하면서 내 삶에서 재정문제로 인한 걱정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믿음을 주셨다. 야브네홀은 1년 후 코로나 팬데믹가운데서도 예배처소와 교회운영이 정상적으로 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다. 지나오는 과정은 힘든 과정이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야브네홀이 다음 세대와 지역주민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전진기지로 잘 활용되도록 기도하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온가족이 함께 믿음의 추억을 만드는 세대로교회

2022 SEMI 교육목회컨퍼런스 간증

안녕하세요? 세대로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안원용 집사입니다.

먼저 이렇게 귀한 목사님들과 선교사님, 사모님들 앞에서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세대로교회에 아버지, 어머니, 저희 부부, 두 딸까지 3대가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세대로교회에 출석한지는 2003년 청년이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19년이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막 제대한 청년이었던 제가 어느덧 초등부와 유년부를 다니고 있는 13살, 9살 두 딸의 아버지, 학부모 성도가 되어 세대로교회 안에서 자녀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크리스천 부모에게 가장 큰 과제는 자녀가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도록 돕는 것 입니다. 저 또한 어느덧 초등부, 유년부 아이들을 둔 아버지가 되다 보니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부모의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게 되길 소망합니다.

세대로교회는 교회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다음세대에게 신앙을 물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에 19년간 다니면서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던 말씀은 자녀에 대한 신앙전수의 책임자가 바로 부모라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세대로교회는 특별히 부모가 말씀에 대하여 순종하고 사는 삶의 모습이 자녀에게로 흘러가야 됨을 무척 강조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따라 아이들에게 신앙을 전수하려고 고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제 마음에 어떻게 신앙이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돌아보게 되고 저희 부모님의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제가 한 교회의 성도로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는데 까지 저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 분이 두 분 계십니다. 한 분은 담임목사님이신 양승헌 목사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저희 어머니 유윤숙 권사님이십니다.

저는 교회에 필요와 목사님, 선교사님들 돕는데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어떤 때는 제가 너무 바쁜데도 교회일과 목사님들의 필요가 눈에 보이는 때들이 있습니다. 애써 하지 않으려 하는데도 자꾸 마음이 쓰여서 제가 왜 이렇게 교회와 목사님들을 돕는 일에 마음이 쓰이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다. 나는 도대체 이 일에 왜 마음이 쓰이는가? 무엇이 나의 시선이 이 곳에 머물게 하는가?

그런데 이게 곰곰히 생각해보니까요, 제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보여주신 교회에 대한 헌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저희 어머니인데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교회에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교회 건축헌금이 부족하다고 젊은 나이에 동네에 리어카를 끌고 고물을 줍기도 하셨고, 아들로서는 조금 속상한 이야기 이지만 교회에 굳은 일이 있으면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데려다가 같이 청소하고 물건을 나르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어머니는 당신이 저를 계모처럼 키웠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그 어린 나이에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과 교회에 필요를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눈으로 배우고 몸으로 익힌 것이었습니다. 또 제가 어렸을 적 어머니가 아버지의 월급봉투를 받으시면 꼭 하시던 일이 있습니다. 봉투를 몇개 가져다 놓으시고 첫째는 십일조, 둘째는 교회 헌금, 셋째는 구제헌금, 넷째는 저축, 다섯째는 공과금, 여섯째는 생활비 이렇게 나눠 담으셨습니다. 어렸을 때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어른이 된 지금 돌아보면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제 삶에 믿음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저에게 성경을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성경말씀데로 살아가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지요. 어느덧 부모가 되어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니 저희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감당해 오신 분 이십니다.

이렇게 어머니로부터 좋은 신앙의 모델을 보고 자라온 저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여전히 저희 어머니처럼 헌신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모지만 어린 자녀들 앞에서 어머니가 보이신 신앙의 본을 따라, 담임목사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 앞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아이가 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일주일에 2~3번 이상 3대가 모두 모여서 저녁식사를 같이합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아이들에게 식기도를 가르치고 시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3~4살 때부터 어른과 함께 돌아가며 기도를 하니 언젠가부터는 아이들에 입술에서 어른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놀랄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22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저는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이 구절처럼 제 딸들이 할아버지의 하나님, 할머니의 하나님, 아빠의 하나님, 엄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날이 올 것을 믿고 기대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대로교회의 예배와 교육을 비롯한 여러 활동들이 “부모님을 통해 아이들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추억들을 만들어 주는 과정”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들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부모에게 있음을 인지하고 계속해서 도전하고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이라는 찬송가를 다들 아실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 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제 두 딸은 엄마아빠 무릎에 앉아 함께 예배하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의 찬양가사처럼 이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재미있게 성경을 듣는 경험을 만들어 주는 세대로 공동체에 저희 가정을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교육목회 컨퍼런스를 통해서 제가 누리는 은혜를 더 많은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저 같이 연약한 자를 이 자리에 세워 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 컨퍼런스가 또 하나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주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참석하신 모든 교회와 목사님들의 삶에 성령충만 함과 영적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창립10주년 온가족캠프의 은혜

온가족캠프의 준비

우리 교회는 창립 첫해부터 매년 여름에 온가족캠프를 진행해 왔어요. 창립하던 2002년에도 창립 예배에 앞서 여름에 온가족캠프를 시행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교회 규모가 커지다 보니 매년 온 가족 캠프를 진행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 되었지요. 목사님께서는 이제는 5년, 10년 단위나 기념이 되는 해 등 기간을 두고 캠프를 진행하자 하셨고 그래서 창립 10주년이 되는 2012년에 이전 캠프 이후 4년 만에 온가족캠프를 진행하게 되었지요.

멈춰있는 수레를 옮기기가 움직이는 수레를 옮기기보다 어렵듯이 몇 년 만에 캠프를 다시 가동하는 게 부담도 되고 처음에는 쉽지도 않았었어요. TF팀을 구성하고, 1년간의 진행계획을 수립하면서, 주께서 지혜를 주셔서 TF팀이 점점 안정화되었지요. 2011년 7월에는 주말마다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해 두었던 장소를 보러 다녔어요. 하지만 성수기인 7월 말에서 8월 초에 전 세대를 만족시킬 수 있고, 예산에 맞는 장소를 찾기가 너무 어렵더군요. 그러다 때마침 다른 교회에서 수련회를 했었는데 정말 좋은 곳이었다며 소개받은 곳이 청포대 썬셋리조트였는데 바닷가에, 큰 강당과 우리 교회 규모에 잘맞는 숙박시설이 있었어요. 여호와 이레지요.

기억에 남는 사건

캠프 때마다 제일 고생하시는 분들이 선발대입니다. 이분들은 몇 주 전부터 가져가야 할 목록을 준비하고 출발에 앞서 음향‧조명 장비, 필요 물품 등을 하나하나 챙겨둡니다. 일부 부족한 장비는 구매하기도 하지만 교회 재정이 열악하니 많은 경우 경비 절감 차원에서 교회에 설치되었던 것들을 떼어가지요. 거기서 끝이 아니라 선발대로 가서 또 이들 장비를 설치하고, 돌아와서는 또다시 원위치하기까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거로 기억합니다. 돌아가신 제갈승 집사나 방송팀, 청년부 등 많은 분의 헌신과 고생에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캠프 때마다 목회자분들의 깜짝 공연이 있었는데요. 그해에도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헨델의 메시야에 맞추어 수사 복장을 한 사역자분들의 카드섹션(?)이 인상 깊었었고, 해가 진 야밤에 야외 바비큐 파티가 있었는데, 많은 남성 성도분들이 조명도 잘 갖추어지지 않아 어둡고 열대야로 더운 날씨 가운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기꺼이 그릴에 고기를 구워 대접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특히나 그 당시 교회 일에 덜 참여하시던 분들을 미리 섭외하였는데 그렇게 교회로 한 걸음 더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온가족캠프를 통해 받은 은혜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

10년 전 일을 기억하려니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초반의 걱정과 다르게 몇 년만의 캠프다 보니 여느 때보다 많은 성도가 참여하여 은혜와 기쁨을 나눌 수 있지요. 당시 캠프 주제가 ‘세대로 하나로’였고, 모두 ‘ALL FOR ONE ONE FOR ALL’이란 주제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주제처럼 교회가 하나 되어 끈끈함이 더하여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캠프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큰 행사에는 주께서도 비상 간섭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좋은 날씨와 바닷가라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었지만 사건‧사고도 없는 등 매번 가장 적기에, 가장 좋은 환경으로 이끄시는 주의 인도하심이 있었고 많은 분의 헌신, 도움의 손길로 캠프가 풍성하게 채워졌던 거로 기억합니다.

감당 못할 은혜, 버스킹 전도

버스킹 전도를 섬기시게 된 계기나 시작할 때의 마음

저는 25살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전까지는 안티 크리스천이었어요. 기독교를 싫어했지요.

대학을 입학한 후, 20대를 시작하면서 음악을 했어요. 홍대에서 인디 밴드를 만들어 5년 간 음악을 했습니다. 건강하게 음악만 하면 좋았겠지만, 술과 담배, 온갖 유흥에 찌들어 살게 되었습니다. 25살에 밴드를 해체하고, 폐인이 된 채 학교 복학도 어려울 만큼 피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자살을 생각하다가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제가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음악을 했던 시간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찬양 사역이었지요. 원래 음악을 좋아하던 저였기 때문에, 신앙을 갖게 된 후 찬양을 하는 것은 저에게 큰 기쁨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노방 전도하는 어느 교회 찬양팀을 보았습니다. 여러 명이 옆으로 쭉 서 있고, 맨 마지막에 양복입은 어떤 아저씨가 기타를 메고 있었지요. 누가 봐도 거리에 나와 전도하는 전형적인 교회 찬양팀이었어요. 그들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지만, 아무도 그 찬양을 듣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물론 누군가 들었을 수 있지만요)

그때 생각했던 것이 ‘버스킹 전도’였어요. 일반 교회 찬양팀이 하는 방식 말고, 독창 혹은 중창으로 음악이라 할만한 멋진 찬양을 세상에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팀을 하나 만들었어요. LNF라는 팀이었어요. Lost & Found라고 ‘유실물 센터’를 뜻하는 말이에요.

제가 캐나다에서 정말 소중한 자켓을 잃어버렸을 때, 바로 이 Lost & Found에서 그 자켓을 찾았거든요. 그때 그 자켓을 다시 찾고 나서 정말 감사해서 감사 기도를 막 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네가 언젠가 나를 위해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오는 Lost & Found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마음에 감동을 주셨어요. 그 생각이 나서, 바로 LNF로 이름을 짓고, 팀을 만들어서 거리 찬양사역을 시작했어요.

거리에서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드리는 ‘유실 영혼 센터’가 되고 싶었던 겁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술 취한 대학생이 가장 많은 신촌 거리 한복판 공원으로 나가서 찬양을 했어요. 제가 술 취해서 뒹굴던 신촌 바로 그 거리에서 저와 같이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찬양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일반 사람들도 귀를 기울이고 듣고 싶을 그런 진짜 아름다운 찬양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부르는 우리가 은혜 받기보다, 듣는 누군가가 은혜 받길 바라면서요.

한 팀이 찬양하고 연주하는 동안 다른 팀들은 사영리를 들고 공원을 돌며 전도했어요. 공연하던 팀이 내려오면 그 팀이 사영리로 전도하고, 전도하던 다른 팀이 올라가서 공연하고요. 제대로 된 음악과 연주를 보여주니 사람들이 우리 앞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어요. 맥주를 마시면서 듣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 그래도 괜찮았어요. 복음을 담은 가사가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요. 약 2년 간 LNF 거리 찬양 사역을 하면서 정말 많은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어요.

 

 

 

 

 

 

 

 

버스킹 전도에 참여하시는 가운데 인상 깊었던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제가 신촌 공원에서 LNF 거리찬양 사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희를 참 어렵게 했던 노숙인 분들이 계셨어요. 그 공원 한 가운데 모여서 늘 술판을 벌이고 계셨던 노숙인분들이 저희가 공연할 때 정말 많은 훼방을 놓으셨어요. 술병을 던지시기도 하고, 욕설을 퍼붓기도 하셨어요. 자매들이 워낙 무서워해서, 저는 장소를 옮겨야 하나 고민과 기도가 많았어요. 

그 중 한 분이 거의 대장님이셨는데, 다른 노숙인들은 계속 바뀌어도 그분은 거기 상주하셨어요. 그분은 막 저희한테 뽕짝 한 번 불러 보라고 주정을 하시기도 하고, 저희가 무시하고 찬양하면 또 행패를 부리시고 그러셨어요. 제가 그분들을 주로 마크했는데, 빵이랑 음료 같은 것을 사가지고 가서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그렇게 좀 맞춰드리면 공연을 못하게 하진 않으셨어요. 어느 날 그 대장 노숙인 아저씨가 술을 먹다가 쓰러지셨어요. 제가 달려가서 아저씨를 끌어 안았고, 저희 팀원들이 약국에 뛰어 가서 약을 사다가 먹여 드렸어요. 그때 다른 노숙인 아저씨들이 우리에게 굉장히 고마워하셨어요. 그 일이 노숙인 아저씨들과 가까워진 큰 계기가 되었지요. 

그중에서도 그 대장 노숙인 분과는 정말 가까운 친구가 되었어요. 그분의 존함도 알게 되었지요. ‘신정도’ 아저씨였어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분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군에 간 아들이 하나 있는데, 가족들 버리고 온 애비라 볼 낯이 없다고, 그런데 너무 보고 싶다고.. 그러시면서 하염없이 우셨어요. 저도 듣다가 같이 울었어요. 제가 그 아저씨에게 간증을 나누었어요. 나도 알콜 중독자로 자살하려다가 예수님 만나서 다시 살았다고, 아저씨도 예수님 믿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요. 그리고 정도 아저씨에게 우리 모든 팀이 손을 얹고 공원 한 가운데서 기도를 해드렸어요. 그 거리에서 우리는 얼마나 눈물 쏟으며 그분을 위해 기도했는지 몰라요. 

그 이후로는 수요일에 우리가 악기를 메고 공원으로 가면 정도 아저씨가 멀리서부터 소리치며 반겨 주셨어요. “우석아!!!” 

제가 다른 일정으로 못 가는 날에는 팀원들에게 저는 왜 안 왔냐고 꼭 찾으셨어요. 다음 주에 가면 지난 주는 왜 안 왔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셨어요. 정도 아저씨는 다른 노숙인 아저씨들이 술 먹고 우리에게 시비를 걸면 중간에서 말려 주시기도 하고,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어요. 물론 매번 소주 한 병만 사달라고 조르시는 것을 거절하기가 참 힘들었지만, 대신 순대국도 사드리고, 빵이랑 우유도 사드렸어요. 생크림을 입에 가득 묻히고 빵 드시던 아저씨는 얼마나 행복해하셨는지 몰라요. 

저는 잠실 세대로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신촌 거리에서 생활하시는 아저씨를 교회로 초청하긴 어려웠어요. 그래서 저희 팀원 중에 신촌 성결 교회 다니는 친구를 소개하면서 교회 한 번 가보시면 어떻냐고 아저씨께 권했어요. 냄새가 좀 나고 더러워도 교회 다니기 시작하시면 도움받으실 수 있을 거라고요. 아저씨는 부끄럽다고 못 가겠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나중에 우석이 봐서 꼭 한 번은 가 볼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한 두 달 후, 주일에 그 팀원에게 전화가 왔어요. 아저씨가 교회 오셨다고요! 그리고 정도 아저씨 전화를 바꾸어 주었어요. “우석아! 아저씨가 그래도 약속 지키는 사나이지?” 나중에 그 팀원에게 들었는데, 어디 가서 좀 씻고 정갈하게 하고 오셨다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거리 찬양을 마무리하고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아저씨도 언제부턴가 그 공원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셨어요. 지금도 많이 생각나고 보고 싶은 분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 정도 아저씨를 꼭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버스킹 전도를 통해 받은 은혜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

세대로 교회에서는 ‘하소연’이라는 팀을 꾸려서 삼전 사거리에서 버스킹 전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소연’은 ‘하나님의 소리를 연주한다’는 뜻으로, 세상 사람들의 걱정근심 가득한 하소연이 찬양을 통해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교회에서 버스킹 전도를 나가는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세대로 교회에서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이 반가웠고 감사했습니다. 

그때 거리에서 찬양했던 곡 중 하나가 홍이삭 님의 <하나님의 세계>라는 찬양이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곳이라 주님의 세계는
정말로 내가 나같고 솔직할 수 있는 곳
조금이라도 내 의라 말할 수 없는 이곳
이곳은 바로 주님의 세계라

세상은 항상 말하네 그 길이 아니라고
곱디 고운 길이 있는데 왜 힘들게 사냐고
단순한 선택조차 내게 버겁기만 한 곳
그래도 나는 주님만 따르리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더 깊도다
더 깊도다

나는 계속 걸어갑니다 수 없이 넘어져도
사람들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다 해도
내가 가는 길이 주가 가르쳐준 길이니

이곳은 바로
이곳은 바로
이곳은 바로 주님의 세계라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거리에서 이 찬양을 부르는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거리에 나와 찬양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온 세계를 펼쳐 나를 안아 주시는 듯했습니다. 입사한 이후, 거리에 나와 버스킹 전도를 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다시 거리에서 찬양을 하는 내 모습이 행복했습니다. 

찬양 가사대로 세상 사람들의 방향과는 다른 길을 가며 수없이 넘어지고 좌절하지만, 나는 여전히 푸른 하늘 아래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업무로 바쁜 일상에 쫓기던 제 삶에 복음을 향한 야성이 회복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신촌에서 거리 찬양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들 은성이가 내 앞에 서 있었습니다. 둘째 은율이는 태중에 있었고요. 제가 청년 시절 신촌에서 거리 찬양을 할 때는 지금의 아내가 여자친구였을 때였습니다. 그때 아내는 찬양팀 맴버는 아니었지만, 제가 없을 때도 용기를 내어 정도 아저씨에게 빵을 사다 드리곤 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버스킹 전도를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복음을 전하러 가는 자리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버스킹 전도는 내 안에 복음을 더욱 뿌리내리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거리로 나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찬양을 하는 그 순간이 아니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과 눈물을 내 가슴에 담을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 영적 전투의 최전방에 설 때, 세상을 구원하시려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그 위대한 사랑이 내 온몸을 통과해 흘러가는 감당 못할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첫째 은성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둘째 은율이도 6살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거리는 아니지만, 세대로 교회 20주년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처음으로 찬양하러 무대에 섭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라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담은 찬양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부르려고 합니다. 자살의 문턱 앞에 서 있던 어느 청년 폐인을 하나님께서는 거리에서 찬양하는 사람으로 불러 주셨고, 이제는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보내주셔서 함께 찬양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야 말로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또 시간이 많이 흘러, 저는 백발의 노년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가정을 이루겠지요. 그리고 또 그때 나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지금처럼 지나온 시간 은혜의 감격을 곱씹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겠지요. 

마침내 이 땅을 떠나 천국에 가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여전히 찬양을 그분께 올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영원의 장소에서, 완전한 모습으로요! 여전히 나의 찬양을 받으시는 우리 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올려 드리며 글을 맺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대로교회를 만나게 한 전도지

2006년 시월.

몸과 마음이 곤고하던 가을에 세대로 교회를 만났습니다.

1년여 동안 섬길교회를 찾으며 방황하던 저의 집 우편함에 세대로교회 전도지를 보았고 성령의 강한 인도하심으로 시월 둘째 주일에 배명고 강당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 세대로교회 성도가 되었습니다. 말씀과 삶이 일치하는 양승헌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메말랐던 저의 심령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늘가족 공동체 안에서 훈련을 받으며 성장하는 은혜를 누리고 멘토로 다음세대를 섬기면서 함께 자라가는 기쁨과 감사를 누렸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시어머님을 천국에 보내드리고 사십대 중반에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버린 친정동생. 오십대초반에 암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난 시동생. 그 힘들고 아픈 시간들을 세대로공동체의 위로와 격려, 사랑으로 이길수 있었습니다.

삶은 여전이 버겁고 고단하지만 날마다 세대로 안에서 누리는 말씀의 은혜와 공동체의 사랑으로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들의 미래인 다음세대와 함께 저는 오늘도 자라고 있습니다.

세대로 안에서.

새생명을 얻은 새생명축제

나의 고향은 절로서 유명한 합천 해인사이다. 그래서 성장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심지어 나의 아버지께서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절에서 생활한 적도 있으셨다. 그래서인지 항상 종교 관련 대화를 하면 불교가 대부분의 주제였다. 따라서 어린 시절 기독교는 크리스마스종소리 정도로만 기억을 하고 그 외에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더 나아가 동네 어르신들에게 항상 기독교는 편협적인 대상이기까지 했다. 나 또한 위로 누님이 세 분이 계시는데, 둘째 누님께서 기독교 집안으로 시집을 가 집안 제삿날에 오면 제사를 지낸 후에는 항상 싸움이 일어나 그런 모습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해 항상 좋지 않은 감정으로 느꼈었다.

성인이 되어 공수특전단에 입대하여 힘들고 어려운 병영 생활을 하였다. 전역 후 나는 1988년도에 관할 구청으로 정화조 청소 대행을 하는 사업장에 취업하였다. 동료들은 어렵고 힘들다며 푸념과 불만을 내뱉었고, 일을 하다가 그만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어려운 병영생활 경험 때문인지 육체적이나 정신적인 어려움이 조금도 없었다. 그리하여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여 대표이사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2001년도에 노동조합이 생겨 힘든 일이 반복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괴감 등으로 나 자신을 포기할까, 이직을 하여 새로운 사업장을 다시 할까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어느 날 운전 중에 차 안에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마비 증세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었다. 후에 병원에서 공황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 도중 2006년도 신성문 장로님으로부터 태신자 카드를 건네어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2007년 4월 1일 세례를 받고 지금까지 열심히 교회에 나올 수 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길목에서 장로님의 진정성 있는 권유가 없었더라면 나는 주님의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며, 오늘날의 집사로서 세대로 교회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이처럼 누군가를 위한 바나바가 되기 위해 삶을 머리 위에 놓고 매듭 위에서 펼쳐지는 크리스천 됨을 알며 그 가치와 의미를 나의 마음 속에 새겨갈 것이다.

처음에 교회에 다닐 때는 목사님의 설교가 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니 어느 순간 설교가 내 마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착하게 살면서 사람들에게 욕먹지 않고 주어진 삶에 충실하면 되겠지 라는 평범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 후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삶의 영역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사랑과 지혜, 겸손과 양보로 더욱 믿음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믿음으로 생활하면서 제자훈련, 사역훈련 과정을 통하여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는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시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는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등지고 죄에 빠짐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실 수 있는가, 우리가 세상에서 환란과 공허와 어둠을 겪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질서와 충만, 그리고 빛이 생겼다. 예수님은 우리와 나와 하나님을 연결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셨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제자훈련의 장주창 목사님과 사역훈련의 양승헌 담임 목사님은 나의 생애에는 잊을 수 없는 분이 되셨다. 그리고 사역훈련 수료식날 로마서 8장을 외우면서 복음에 대한 진한 감정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

빛이 어둠을 비추었으나 그 빛이 밝지 않았다. 그리하여 문밖에 서성이지 말고 들어오라 하였다. 문안에서 평화와 질서를 이루기 위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문 밖의 사람들을 위해서, 다시 전도폭발훈련을 시작할 것이다. 송한종 장로님과 함께 좋은 믿음으로 매진할 것이다.

전도폭발훈련을 통해 받은 은혜

전도 폭발 훈련이 주보에 실렸을 때 마음속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 땅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설 때 몇 명이나 전도 했느냐고 물으시면 머뭇거릴 수 밖에 없겠다 하는 두려움. 또 한편으로 예전에 전도훈련이라 하여 참여 했는데 짧은 시간 제대로 훈련이 안된 상태에서 첫날부터 노방전도를 실시하여 난감했던 경험으로 마음의 부담이 요동쳤습니다.

전도는 항상 부담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사탄이 가장 싫어 하는 일을 해 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전도폭발 훈련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어 좋으니까 그 말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12주 전도폭발 훈련을 통하여 쳬계적으로 배우고 나니 무조건 믿으라는 전도는 바른 전도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왜 믿어야하는지 근거를 제시하고 바른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물론 여전히 반대하는 의견들에 대해 잘 대처할 수 있는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훈련을 마치면서 세대로교회 전도폭발 1기 훈련생으로 교회의 본이 되어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이번 훈련을 통하여 그리스천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강력한 복음의 무기를 장착했다는 든든함이 생겼습니다.

사실 이번에 훈련 받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정말 신실한 믿음이 있어 보이던 사람도 영생을 가졌는지 물으면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라기는 이 전도폭발훈련과정이 교회의 훈련과정으로 자라 잡았으면 좋겠고 또 할 수 있다면 멘토님들의 필수과정이 되어 다음세대에게 정확한 복음이 제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번 훈련이 끝나갈 쯤에 남쪽에 2박3일 일정으로 여행을 갈 기회를 얻어 진도에서 군대 동기를 만나 관광지를 같이 다닐 기회가 있었습니다 신앙 이야기를 꺼내 만약 오늘이라도 이땅을 떠난다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물으니 착하게 살았으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면서 말을 흐리는 것을 듣고 이 친구에게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겨 복음의 핵심을 훈련 받은대로 정확히 전하고 나도 한 때 친구처럼 착하게 살면 되지 했는데 착한 것의 기준이 세상이 말하는 착함이 아니라 성경은 이렇게 죄를 정의하지…….이런 기준으로 볼 때 친구는 하루에 몇 번이나 죄를 짓고 산다고 생각하는가 물으니 많이 짓고 사는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한다네 이렇게 순순히 거부하지 않고 복음을 받아 들였습니다.

여행 말미에 세대로 교회에 수년간 같이 섬긴 김승권목사님, 정영미 사모님이 진도에 내려가셔서 삼막제일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 알고 있었기에 차안에서 복음을 전한 친구가 신앙 생활을 잘 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혹시 삼막제일교회 아냐고 물으니 친구가 교회 있는 곳을 알고 있었습니다 친구와 같이 찾아 가서 뵙고 기도하고 교제하고 이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이 복음이 잘 자라게 목사님께 부탁드린 것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이 전도훈련 받은 것을 실습하라고 예비해 두신 것임을 간증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이번 훈련을 통해 저의 신앙도 점검하고 예수님의 지상명령 성취를 위한 가장 큰 복음의 무기를 장착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많은 성도님들이 이 훈련에 참여하여 저와 같은 은혜를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이 훈련을 위하여 수고하신 홍문균 목사님과 훈련자로 참여한 김지태, 한대우 목사님, 훈련생으로 같이 참여한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그리고 기도 후원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두서 없이 나눈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전도폭발 훈련을 마치고

“전도폭발 훈련”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평소에 복음을 잘 전달하면 좋겠다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는지 관심이 있었습니다. 훈련일정이 월요일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이번은 기회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도” 라는 부담감이 있는 주제여서인지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며칠후 담임 목사님에게 한통을 전화를 받고 훈련일정이 토요일로 바뀌었다고 하시면서, 저에게 훈련 참가 권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평소 목사님께 배운데로 네! 그리하겠습니다.로 답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영적 전쟁은 시작 되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첫날부터 코로나로 인해 교육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토요일마다 평소에 없던 약속은 많이 잡히는지….. 두 번째 시간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현장 훈련을 참석하게 되었고, 어색함은 여전했으며, 훈련시간은 왜~이리 긴지 힘들기만 했습니다.

세 번째 시간, 드디어 주님의 터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복음제시 훈련중에 지난 수십년간 무심코 지난간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나니(요한복음 4:47)”라는 말씀이 설레이고 가슴 깊은 찐한 감동을 느꼈고, 이 말씀을 저를 통해 전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리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차례의 현장실습을 통해 우리 주변에 신앙이 좋을 것이라고 알고 지냈던 분들도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에 놀랐고, 우리 주변에 많은 분들에게 복음제시가 필요했으며, 저를 포함한 많은 교우 분들도 신앙의 재정비가 필요함을 새삼 느겼습니다. 주님은 이 사역을 기대하시며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죄 많은 인간인지라 항상 뜨겁고, 기대만 가득했던 것은 아닙니다.

노방전도를 계획하고, 상당히 긴 복음제시 문구들을 보며, 부담감이 없다하면 거짓말입니다. 복음제시 문구들도 여러번 보다보니 입에 익어갔지만, 옆에 계신 송장로님의 수첩을 보며, 저렇게 열심히 하시니 장로 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지 않은 12주의 훈련시간을 통해 체계적인 복음제시 방법을 알았고, 상황에 따른 대처 방법을 통해 전도에 대한 막연함이 거쳐지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한 학기 동안 지도해 주신 홍문균 목사님과 1기 훈련생들이 있었기에 COVID-19로 어려운 상황에서 전도폭발 훈련이 은혜와 기쁨으로 가득했었습니다. 또한, 훈련자 김지태 목사님과 두분의 기도 후원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훈련이 끝난 후에도 함께 공부하고 배운 복음의 말씀을 내 주변의 가족 형제부터 먼저 전하며 하늘 나라의 확장의 도구로 살아가길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