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감당 못할 은혜, 버스킹 전도

버스킹 전도를 섬기시게 된 계기나 시작할 때의 마음

저는 25살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전까지는 안티 크리스천이었어요. 기독교를 싫어했지요.

대학을 입학한 후, 20대를 시작하면서 음악을 했어요. 홍대에서 인디 밴드를 만들어 5년 간 음악을 했습니다. 건강하게 음악만 하면 좋았겠지만, 술과 담배, 온갖 유흥에 찌들어 살게 되었습니다. 25살에 밴드를 해체하고, 폐인이 된 채 학교 복학도 어려울 만큼 피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자살을 생각하다가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어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제가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음악을 했던 시간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찬양 사역이었지요. 원래 음악을 좋아하던 저였기 때문에, 신앙을 갖게 된 후 찬양을 하는 것은 저에게 큰 기쁨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노방 전도하는 어느 교회 찬양팀을 보았습니다. 여러 명이 옆으로 쭉 서 있고, 맨 마지막에 양복입은 어떤 아저씨가 기타를 메고 있었지요. 누가 봐도 거리에 나와 전도하는 전형적인 교회 찬양팀이었어요. 그들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지만, 아무도 그 찬양을 듣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물론 누군가 들었을 수 있지만요)

그때 생각했던 것이 ‘버스킹 전도’였어요. 일반 교회 찬양팀이 하는 방식 말고, 독창 혹은 중창으로 음악이라 할만한 멋진 찬양을 세상에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팀을 하나 만들었어요. LNF라는 팀이었어요. Lost & Found라고 ‘유실물 센터’를 뜻하는 말이에요.

제가 캐나다에서 정말 소중한 자켓을 잃어버렸을 때, 바로 이 Lost & Found에서 그 자켓을 찾았거든요. 그때 그 자켓을 다시 찾고 나서 정말 감사해서 감사 기도를 막 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네가 언젠가 나를 위해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오는 Lost & Found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마음에 감동을 주셨어요. 그 생각이 나서, 바로 LNF로 이름을 짓고, 팀을 만들어서 거리 찬양사역을 시작했어요.

거리에서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드리는 ‘유실 영혼 센터’가 되고 싶었던 겁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술 취한 대학생이 가장 많은 신촌 거리 한복판 공원으로 나가서 찬양을 했어요. 제가 술 취해서 뒹굴던 신촌 바로 그 거리에서 저와 같이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찬양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일반 사람들도 귀를 기울이고 듣고 싶을 그런 진짜 아름다운 찬양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부르는 우리가 은혜 받기보다, 듣는 누군가가 은혜 받길 바라면서요.

한 팀이 찬양하고 연주하는 동안 다른 팀들은 사영리를 들고 공원을 돌며 전도했어요. 공연하던 팀이 내려오면 그 팀이 사영리로 전도하고, 전도하던 다른 팀이 올라가서 공연하고요. 제대로 된 음악과 연주를 보여주니 사람들이 우리 앞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어요. 맥주를 마시면서 듣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 그래도 괜찮았어요. 복음을 담은 가사가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요. 약 2년 간 LNF 거리 찬양 사역을 하면서 정말 많은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어요.

 

 

 

 

 

 

 

 

버스킹 전도에 참여하시는 가운데 인상 깊었던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제가 신촌 공원에서 LNF 거리찬양 사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희를 참 어렵게 했던 노숙인 분들이 계셨어요. 그 공원 한 가운데 모여서 늘 술판을 벌이고 계셨던 노숙인분들이 저희가 공연할 때 정말 많은 훼방을 놓으셨어요. 술병을 던지시기도 하고, 욕설을 퍼붓기도 하셨어요. 자매들이 워낙 무서워해서, 저는 장소를 옮겨야 하나 고민과 기도가 많았어요. 

그 중 한 분이 거의 대장님이셨는데, 다른 노숙인들은 계속 바뀌어도 그분은 거기 상주하셨어요. 그분은 막 저희한테 뽕짝 한 번 불러 보라고 주정을 하시기도 하고, 저희가 무시하고 찬양하면 또 행패를 부리시고 그러셨어요. 제가 그분들을 주로 마크했는데, 빵이랑 음료 같은 것을 사가지고 가서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그렇게 좀 맞춰드리면 공연을 못하게 하진 않으셨어요. 어느 날 그 대장 노숙인 아저씨가 술을 먹다가 쓰러지셨어요. 제가 달려가서 아저씨를 끌어 안았고, 저희 팀원들이 약국에 뛰어 가서 약을 사다가 먹여 드렸어요. 그때 다른 노숙인 아저씨들이 우리에게 굉장히 고마워하셨어요. 그 일이 노숙인 아저씨들과 가까워진 큰 계기가 되었지요. 

그중에서도 그 대장 노숙인 분과는 정말 가까운 친구가 되었어요. 그분의 존함도 알게 되었지요. ‘신정도’ 아저씨였어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분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군에 간 아들이 하나 있는데, 가족들 버리고 온 애비라 볼 낯이 없다고, 그런데 너무 보고 싶다고.. 그러시면서 하염없이 우셨어요. 저도 듣다가 같이 울었어요. 제가 그 아저씨에게 간증을 나누었어요. 나도 알콜 중독자로 자살하려다가 예수님 만나서 다시 살았다고, 아저씨도 예수님 믿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요. 그리고 정도 아저씨에게 우리 모든 팀이 손을 얹고 공원 한 가운데서 기도를 해드렸어요. 그 거리에서 우리는 얼마나 눈물 쏟으며 그분을 위해 기도했는지 몰라요. 

그 이후로는 수요일에 우리가 악기를 메고 공원으로 가면 정도 아저씨가 멀리서부터 소리치며 반겨 주셨어요. “우석아!!!” 

제가 다른 일정으로 못 가는 날에는 팀원들에게 저는 왜 안 왔냐고 꼭 찾으셨어요. 다음 주에 가면 지난 주는 왜 안 왔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셨어요. 정도 아저씨는 다른 노숙인 아저씨들이 술 먹고 우리에게 시비를 걸면 중간에서 말려 주시기도 하고,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어요. 물론 매번 소주 한 병만 사달라고 조르시는 것을 거절하기가 참 힘들었지만, 대신 순대국도 사드리고, 빵이랑 우유도 사드렸어요. 생크림을 입에 가득 묻히고 빵 드시던 아저씨는 얼마나 행복해하셨는지 몰라요. 

저는 잠실 세대로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신촌 거리에서 생활하시는 아저씨를 교회로 초청하긴 어려웠어요. 그래서 저희 팀원 중에 신촌 성결 교회 다니는 친구를 소개하면서 교회 한 번 가보시면 어떻냐고 아저씨께 권했어요. 냄새가 좀 나고 더러워도 교회 다니기 시작하시면 도움받으실 수 있을 거라고요. 아저씨는 부끄럽다고 못 가겠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나중에 우석이 봐서 꼭 한 번은 가 볼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한 두 달 후, 주일에 그 팀원에게 전화가 왔어요. 아저씨가 교회 오셨다고요! 그리고 정도 아저씨 전화를 바꾸어 주었어요. “우석아! 아저씨가 그래도 약속 지키는 사나이지?” 나중에 그 팀원에게 들었는데, 어디 가서 좀 씻고 정갈하게 하고 오셨다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거리 찬양을 마무리하고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아저씨도 언제부턴가 그 공원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셨어요. 지금도 많이 생각나고 보고 싶은 분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 정도 아저씨를 꼭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버스킹 전도를 통해 받은 은혜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

세대로 교회에서는 ‘하소연’이라는 팀을 꾸려서 삼전 사거리에서 버스킹 전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소연’은 ‘하나님의 소리를 연주한다’는 뜻으로, 세상 사람들의 걱정근심 가득한 하소연이 찬양을 통해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교회에서 버스킹 전도를 나가는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세대로 교회에서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이 반가웠고 감사했습니다. 

그때 거리에서 찬양했던 곡 중 하나가 홍이삭 님의 <하나님의 세계>라는 찬양이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곳이라 주님의 세계는
정말로 내가 나같고 솔직할 수 있는 곳
조금이라도 내 의라 말할 수 없는 이곳
이곳은 바로 주님의 세계라

세상은 항상 말하네 그 길이 아니라고
곱디 고운 길이 있는데 왜 힘들게 사냐고
단순한 선택조차 내게 버겁기만 한 곳
그래도 나는 주님만 따르리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더 깊도다
더 깊도다

나는 계속 걸어갑니다 수 없이 넘어져도
사람들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다 해도
내가 가는 길이 주가 가르쳐준 길이니

이곳은 바로
이곳은 바로
이곳은 바로 주님의 세계라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거리에서 이 찬양을 부르는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거리에 나와 찬양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온 세계를 펼쳐 나를 안아 주시는 듯했습니다. 입사한 이후, 거리에 나와 버스킹 전도를 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다시 거리에서 찬양을 하는 내 모습이 행복했습니다. 

찬양 가사대로 세상 사람들의 방향과는 다른 길을 가며 수없이 넘어지고 좌절하지만, 나는 여전히 푸른 하늘 아래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업무로 바쁜 일상에 쫓기던 제 삶에 복음을 향한 야성이 회복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신촌에서 거리 찬양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들 은성이가 내 앞에 서 있었습니다. 둘째 은율이는 태중에 있었고요. 제가 청년 시절 신촌에서 거리 찬양을 할 때는 지금의 아내가 여자친구였을 때였습니다. 그때 아내는 찬양팀 맴버는 아니었지만, 제가 없을 때도 용기를 내어 정도 아저씨에게 빵을 사다 드리곤 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버스킹 전도를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복음을 전하러 가는 자리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버스킹 전도는 내 안에 복음을 더욱 뿌리내리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거리로 나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찬양을 하는 그 순간이 아니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과 눈물을 내 가슴에 담을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 영적 전투의 최전방에 설 때, 세상을 구원하시려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그 위대한 사랑이 내 온몸을 통과해 흘러가는 감당 못할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첫째 은성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둘째 은율이도 6살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거리는 아니지만, 세대로 교회 20주년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처음으로 찬양하러 무대에 섭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라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담은 찬양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부르려고 합니다. 자살의 문턱 앞에 서 있던 어느 청년 폐인을 하나님께서는 거리에서 찬양하는 사람으로 불러 주셨고, 이제는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보내주셔서 함께 찬양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야 말로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또 시간이 많이 흘러, 저는 백발의 노년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가정을 이루겠지요. 그리고 또 그때 나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지금처럼 지나온 시간 은혜의 감격을 곱씹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겠지요. 

마침내 이 땅을 떠나 천국에 가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여전히 찬양을 그분께 올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영원의 장소에서, 완전한 모습으로요! 여전히 나의 찬양을 받으시는 우리 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올려 드리며 글을 맺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테그

0:00
0:00